여묘살이 뜻, 시묘살이 뜻, 여부살이 뜻: 궁금증 싹~ 풀어드립니다!

여묘살이, 시묘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들은 과거 유교 사회에서 효를 다하는 방식으로 쓰였던 말들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들의 뜻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묘살이/시묘살이

시묘살이

여묘살이는 부모님의 묘 옆에 초막이나 여막을 짓고 생활하며 3년간 묘를 돌보는 적극적인 효행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를 여묘살이, 시묘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으며, 과거에는 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유교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풍습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효도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효행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여묘살이는 이러한 효도의 표현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여겨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려 시대의 성리학자 정몽주가 있습니다. 정몽주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묘살이 3년상을 최초로 이룬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회 변화와 가치관 변화로 인해 여묘살이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묘살이가 가진 효의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효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여부살이

여부살이라는 단어는 표준 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공식적인 용어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밤에 피는 꽃”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여묘살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부살이란, 여묘살이와 비슷하게 남편의 상중에 그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살면서 묘를 지키는 일을 말합니다. 여부살이는 여묘살이의 묘 대신 남편을 뜻하는 ‘아비 부’ 자로 바꾸어서 쓰인 말입니다. 즉 ‘남편 곁으로 가서 함께 하라는 의미’로 쓰였으며,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드라마 <밤에 피는 꽃>에서 나오는 말로 유명해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여부살이”는 드라마 작가가 “여묘살이”의 의미를 남편 곁에서 지내는 것으로 확장하여 새롭게 만든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